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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긁어서 부스럼 (레노버 x1 카본 10세대) 2탄

by 모콤보소 2023. 1. 27.

긁어서 부스럼 1편에서 2편을 예고해 놓고 이제야 2편을 쓴다.

지난 글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s://beyondtw.tistory.com/46

 

긁어서 부스럼 (레노버 x1 카본 10세대)

부제: 윈도우 11 설치 중 네트워크 드라이버 잡아주기 교토대학교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오면서 나에게도 처음으로 내 스스로가 활용할 수 있는 작은 연구비가 생겼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일이

beyondtw.tistory.com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하고,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큰 것을 보지 못하는 내 성격이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특히나 내가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인데. 한 가지 고마운 점은 그런 내 성격 때문에 내 블로그의 주제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어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작은 것에 집착하는 내가, 나의 이런 지독한 어리석음을 자기 비하로 빠지지 않도록 승화시키는지, 그리고 그때 자기기만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고 싶으면 내가 교토에서 식칼을 갈았던 이야기를 읽어 보시면 된다. 귀찮은 분들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벼룩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울 성격인 나는 결국 몰리브덴/바나듐 식칼을 산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 가며 다이아몬드 숫돌을 이용해 내 식칼을 갈 수 있었다. 좀 더 공부를 하고 이성을 이용했으면 좋았을 것을, 일단 질러보고, 그리고 후회하는 내용이다. 뭐 어떡하겠는가. 이성이라는 것은 항상 내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쓰이기 쉽지, 행동하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식으로는 잘 작동하지 않으니.... 

 

그런데 식칼은 그래도 4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 녀석이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그렇게 큰 후회는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 산 레노버 노트북(랩탑)이다. 무려 27만 엔이 넘는. 그런데 이 비싼 녀석이, 키보드를 두드릴 때 가장 큰 만족감과 타격감을 주는 엔터(Enter) 키가 산지 2주도 안되어서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 바람도 불어 넣어보고, 몇 번씩 엔터키를 두드려 보았지만, 잠깐만 소리가 나지 않을 뿐. 고칠 수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그냥 써야 하나 하고 자문을 해보았지만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고 삐걱거리는 키감이 도저히 내 마음 한구석을 뒤집어 놓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또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벼룩을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울 수도 있는 내 마음이....언제나 내 행동에 기름이 되는 내 감정이...

 

어떡해야 할까라는 이성이 작동하기도 전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키보드를 떼어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유튜브는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지면 안되는데.... 그러다가 키캡이 망가지거나 하면 더 큰일인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럴 때 나의 이성은 항상 내 행동을 저지하지 못한다. 와. 어느덧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키보드 아래에 드라이버를 밀어 넣고 키보드를 들어 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내 이성은 이번에도 행동의 방관자 역할을 하고 만다. 그리고는 또 언제나처럼 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궁리를 한다. 이 얼마나 충실한 녀석인가. 이때 옆에서 자기기만이 이런 내 합리적 이성을 다독여 주며 아래처럼 말을 한다. 

 

괜찮아. 1년 보증이 있잖아! 그리고 이 기회에 키보드를 수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는 법이야.

 

아 고마운 녀석들. 나는 내 모든 합리성을 발휘한 끝에(반어법) 그렇게 키보드를 들어 올렸고, 이럴수가. 두 개 있는 enter 키의 힌지 중 하나가 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 이래서 삐걱거리며 소리가 났구나 하면서, 이렇게 일을 벌인 나 자신이 정말이지 뿌듯하다. 세상에 이런 소인배.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원인을 알았지만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것 저것 시도한 끝에 부러진 힌지를 제거하면 삐걱거리지도 않고 키보드도 잘 눌러졌다. 물론 힌지를 제거한 쪽을 누르면 키보드가 잘 눌러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몇 번이고 키캡을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니 키캡이 휘어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오늘도 이렇게 나는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휘어진 키캡이 부러지지는 않아서 적당히 원상복구를 할 수 있었다.

부러진 힌지. 내 마음은 다행히 같이 부러지지 않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는 불편하니, 어떻게든 수리를 해야 할터. 나는 먼저 레노버 서비스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원래 상자에 넣어서 택배로 보내달라고 한다. 연말이었기에, 3주 정도 시간이 소요될 거라고 한다. 세상에, 3주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고, 출장 수리를 위한 서비스 센터 전화번호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내 보증은 출장 수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다. 그래도 출장수리가 가능하다고는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흰지 하나만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레노버는 그런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고객님을 위해서 키보드 전체를 교환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출장비와 키보드 가격을 포함해서 약 6만 엔에서 7만 엔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카본을 쓰는 당신에겐 돈이 많을테니, 뭐 그정도야! 당신의 2주일에 비하면 싼 편 아닌가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와. 내가 속한 세상에서는 이게 당연한 것인가 싶다. 그럼 택배로 보내면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내 과실이 아닌 경우 비용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키보드의 힌지가 처음부터가 아니고 사용 후 2주 후에 고장 난 것에서 내 과실이 없는지 내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이 그들의 과실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도 힘들겠지만....

 

그래서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이런 큰 벽에 부딪히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이때 또 내 이성과 자기기만은 박수를 치며 이런 옳은 결정을 한 내 자신을 옹호해준다. 그런데, 내 마음 한구석의 감정은 엔터키를 누를 때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라며 꿈틀꿈틀하기 시작한다. 다른 키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실행 키 아닌가. 뭐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또 나를 항상 도와주는 구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레노버 키보드의 힌지만을 파는 사이트를 알려준다. 와. 또 세상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사이트에 보니 키 캡도 같이 파는 것 같았으나 문제는 아직 나온 지 얼마 안 된 x1 카본 10세대의 키 캡은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래도 힌지의 모양이 9세대와 같아 보였기 때문에, 알리 익스프레스(aliexpress)를 통해 9세대의 키캡과 힌지를 주문하기로 했다. 그래서 판매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어머나. 사진을 보여주니 맞는 힌지라고 하면서 10세대 키캡도 있다고 한다. 설마했지만 그냥 주문하기로 했다. 약 2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뭐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주문을 했다.

 

도착한 힌지를 끼우고 Enter키를 조립했다. 같이 보내준 키캡은 맞지 않아서 그냥 서랍에서 놀고 있다.

2주 정도 지난 이후 키캡과 힌지 2개가 도착했다. 역시나 키캡은 9세대 용이라서 10세대와 맞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일본어 키보드가 아니고, qwerty 영문 자판을 쓰고 있다. 그래도 힌지는 맞았기 때문에 그동안 비워두었던 곳에 힌지를 넣고 잘 조립을 하고 내 휘어진 enter 키를 적당히 펴서 조립을 했다. 와. 이제 소리도 안 나고 키감도 회복이 되었다. 와. 돈을 번 기분이다. 만원 정도에 나는 이제 마음껏 엔터키를 두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힌지를 바꾼 지 한 달이 넘은 지금도 아무런 문제 없이 엔터키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후회를 하며 더 큰 기쁨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것들에 신경 쓰면서 놓치고 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고마운 아내는 언제나처럼 너무나 쿨하게 "고생했어"라고 해준다. 뭐 그거면 되었다. 그래 이런 일은 그냥 이 정도면 충분한 일이고, 그것이면 된 것이다. 이 글의 결론이고 뭐고 없다. 그래 그거면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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