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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

교토에서 식칼을 갈면서 3

by 모콤보소 2023. 1. 2.

지난 2편에 이어서 나의 식칼갈기 분투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전편은 아래에서 읽을 수 있다.

제1편. https://beyondtw.tistory.com/40

 

교토에서 식칼을 갈면서

지난 11월 일본에 와서 정착하며 식칼을 샀다. 괜찮은 식칼한번 써보자 하며 내딴에는 거금인 3500엔을 들여 시모무라 공업의 몰리브덴/바나듐 강의 식칼을 구매하였다. 처음으로 사보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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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https://beyondtw.tistory.com/41

 

교토에서 식칼을 갈면서 2

지난글 교토에서 식칼을 갈면서 지난 11월 일본에 와서 정착하며 식칼을 샀다. 괜찮은 식칼한번 써보자 하며 내딴에는 거금인 3500엔을 들여 시모무라 공업의 몰리브덴/바나듐 강의 식칼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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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시도 끝에 마침내 다이아몬드 숫돌을 구매하였다. 지난 12월 31일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니 숫돌이 도착해 있었다. 숫돌을 보며, 이제 스스로의 어리석음 증명하는 이 여정도 끝이 나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숫돌을 꺼내보니 분명 새것인데도 아래 그림의 왼쪽 편에 보는 것처럼 육각형의 다이아몬드 코팅이 깔끔하지가 못했다. 이래서 다른 아마존의 상품보다 몇백 엔이 더 싼 것인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이런 식의 제품을 팔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3년 전 내가 일본에 처음 유학 왔을 때와 비교해서 요즘 나오는 일본의 제품의 질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라, 그냥 넘기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 30년 가까이 임금이 오르지 않았고, 엔화는 계속 싸지기만 했다. 그래서 물건의 값을 올릴 수 없어 제품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것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된다. 

벌집모양으로 다이아몬드 코팅이 되어 있다. 왼쪽편의 불규칙한 모습이 일본 제품의 질의 하락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감상은 그만하고, 동봉된 설명서에 따라 숫돌위에 물을 조금 붓고 그동안 연마한 나의 칼 가는 솜씨를 발휘해 본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지난번 이용했던 숫돌과는 달리 식칼이 정말 묵직하게 갈린다. 같은 힘을 주는데, 너무 잘 갈려서 칼이 작아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그래서 약 30번 정도만 왕복운동을 하며 한쪽면을 갈고, 다른 쪽 면도 약 30번 정도 갈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숫돌을 이용해 칼날을 정돈하였다. 며칠을 연습한 덕에 제법 그럴듯한 칼갈이를 하고 있는 내가 자랑스러워 보인다. 이러려고 나는 그동안 고생을 했다고, 이 작은 성취에 뿌듯함을 느끼며 자위해 본다. 이 얼마나 소인배적인 특성을 가진 마음의(혹은 뇌의) 보상회로인가.

 

그래도 칼날이 잘 선 것 같은 게,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칼을 씻어 파를 잘라보았다.

쓱썩

쓱썩

대충 갈았지만, 파가 깔끔하게 잘린다.

와. 세상에.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칼을 밀어내던 대파가 큰 저항 없이 칼을 받아들인다. 마치 흡수하는 것처럼. 파를 자르는지, 때리는고 있는지 잘 구분이 안되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에 내 마음은 요동을 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뿌듯해 한다. 역시 잘못된 방법으로는 열심히 해봐야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이었다라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운에 의해서 결과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어리석은 후회만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칼의 재료와 그에 맞는 숫돌을 선택해야 한다는 평범하고 쉬운 진리를 나는 이렇게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웠지만, 이 글을 보는 분들은 부디 그런 시행착오 없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세상은 항상 바뀌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것보다 더 낫지만 기존의 방식과는 달라 새로운 다른 방식으로만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더 느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저항을 하고 싶은 우리지만, 새롭게 나타나는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식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리 경도가 높지 않고 무거운 스테인리스칼을 매일매일 갈아가며 주방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말자. 아니 강요는 너무 나간 것 같고, 새로운 방식의 칼들에 대해서 내가 가진 기존의 지식을 가지고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일은 하지 말자. 이런 새로운 칼은 기존의 방법대로 갈아대면, 내가 한 것처럼, 오히려 망가지기만 할 뿐이니까. 그리고 잘못된 방식으로 평가한 새로운 도구에 대한 실망감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는 우리 인간의 성향과 이어지면, 우리는 그냥 거기서 성장을 멈춰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런 행동 하나하나는 자기 기만을 이용해서 안전지대(comfort zone)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뇌의 보상회로에 거름을 줄뿐이다. 이런식의 진화된 인간의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조금만 하고,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도구에 맞는 새로운 사용방법을 몇번이고 시도해 보는 것이다. 요즘처럼 더 날카롭고 지속성도 좋은 튼튼하고 가벼운 새로운 합금의 칼이 싼 가격에 많이 공급되는 이런 시대에, 기존의 숫돌을 가지고 잘못된 방식으로 칼을 갈면서 요즘 칼들은 갈아도 잘 안 드니 옛날 칼이 좋았어라는 둥의 결론까지 가지 말자.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할 때, 비록 그 시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후회하며 그 시도를 부정하지 말자. 이는 우리의 보상회로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을 강화시켜주기만 할뿐이다. 원래 잘 안되는 게 정상이다. 주변에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해봤는데 안돼" 이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나는 여기까지 해보았는데 잘 안되었다며 내가 한 실패를 자세히 알려줘 보자. 그렇게 우리 인간은 전달되는 지식을 통해서 더 큰 발전을 해왔지 않는가.

 

식칼 하나 새로 샀다가 이렇게 많은 추가 지출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배운 것이 생겼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식칼이 혹시 몰리브덴이나 바나듐을 쓰고 있다면, 이 기회에 다이아몬드 숫돌을 사서 갈아보도록 하라. 정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고, 아래 사진처럼 대파가 정말로 잘 잘려 있는 맛있는 오믈렛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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