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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윈도우 11을 사용하며

by 모콤보소 2023. 1. 3.

20년도 전, 윈도우 98에서 윈도우 Me로 새롭게 OS가 넘어가던 시절이랬다. 고등학교 때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스타크래프트에 미쳐 있었던것 같다. 피씨방에 가면 쾌적한 환경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아무런 문제 없이 할 수 있었지만, 거리도 멀고 밤에 몰래 나가서 게임을 할 용기도 없었기에 64메가 램만 가지고 있던 학교의 컴퓨터를 최적화 해서 어찌저찌 스타크래프트를 돌렸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밤을 새가며 배틀넷에 빠져들었는데, 아마 공부에서 멀어져버린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더 미친듯이 몰입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스타크래프트를 위험하게 하던 시기도 지나가고 고2가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것 같다. 내가 컴퓨터의 최적화와 윈도우 새로 깔기, 컴퓨터 부속품 조립 등에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은. 그래도 고3이 되고부터는 다행히 수능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 수능 공부는 적성에 맞아 대학교에도 갈 수 있었다. 그때 건축을 선택했다가, 다시 같은 학교의 생명과학과로 재입학한 것은 안비밀. 

 

고2가 되면서, 스타크래프트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왜냐면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실력은 점점 나와는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만큼 열심히 게임을 하지 않으면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고, 가정 형편상 사실 게임을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있는 고장난 컴퓨터의 남아있는 부품들을 가지고 스타가 되는 컴퓨터를 만드는데 더 열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윈도우 98을 몇번이고 다시 깔고 지우고. 얼마나 많은 밤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어느덧 게임은 뒷전이고, 친구들이 내가 그렇게 최적화 한 컴퓨터에서 스타를 하려고 싸우는 것을 즐기게 되었던것 같다. 피씨방에 갈 용돈을 부모님께 받지 않았던 것이 결국에 내가 대학에 가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윈도우 98.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이 녀석과 씨름하였는지.

그렇게 윈도우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엉망이었던 윈도우 me를 거쳐 윈도우 xp의 알파 버전을 고3 수능이 끝나고 열심히 고물 컴퓨터에다가 깔고 지우고, 깔고 지우고를 반복했었다. 그 작업이 뭐 그리 재미있었는지. 차라리 그때 프로그램에 빠졌더라면 아마 내 진로도 바뀌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다른 아이들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를 갖지 못한 나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보다는 단순하지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윈도우 설치 같은 일이 더 잘 맞았던것 같다. 지금도 논문을 쓰는 것보다는 논문의 피겨 만드는 일이 더 재미있는 것만 봐도, 그렇게 윈도우 설치와 재설치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몇년을 살고보니 윈도우를 새로 깔고 최적화 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을 도와주었고, 또 그만큼 문제도 많이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사람에 대해서 배웠던것 같다. 이전의 드랍박스를 소개하는 글에서 잠깐 이야기 했던것처럼, 괜히 도와준다고 했다가, 데이터를 날리는 둥의 더 큰 문제를 만든 적도 여러번 있다. 그래도 지치지 않았던것은 아마도 내 마르지 않는 오지랖 능력과 터무니 없는 긍정성 덕택인듯 하다. 이렇게 윈도우를 계속해서 깔고, 지우고 만지다보니, 윈도우의 키보드 단축키는 나와 정말 친한 친구이다. 특히 탐색기를 띄우는 단축키인 Win + E, 실행인 Win + R, 그리고 마우스 오른쪽버튼과 조합하여 새롭게 폴더를 만들때 편하게 이용하던 마우스 오른쪽 버튼 클릭(우클릭) + W, F. 그리고 속성창의 단축키인 우클릭+ R. 이렇게 4가지 조합은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윈도우만의 단축키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완전 자주 쓰는 문장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윈도우 11로 넘어오면서 말이다.

 

마우스 우클릭의 메뉴가 크게 개편되면서 내가 자주 쓰던 단축키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특히나 우클릭+ R이 폴더의 속성창을 열어주는 단축키었는데, 이것이 사라지고 Alt + Enter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클릭+W,F도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나는 업데이트나, 여러가지 윈도우 설정을 조정하기 위해서 내컴퓨터 아이콘에서 우클릭+R을 이용해 시스템 등록정보에 들어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마우스와의 조합 단축키는 불가능 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윈도우 11에서도 우클릭을 하면 나오는 메뉴에서 Show more options을 클릭하면 윈도우 10에서까지 쓰던 메뉴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이전과 같은 메뉴가 열린 상황에서는 전과 같은 키보드 단축키가 사용가능하다. 그런데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Show more options을 한번 클릭하거나, Shift + F10키를 이용해 이전의 메뉴를 열어야 한다. 

 

마우스 우클릭으로 펼쳐지는 메뉴가 달라졌다. 나는 윈도우 98 에서부터 윈도우 10까지 20년 넘게 사용한 단축키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바꿔버린 것에는 이유가 몇몇 있을 것 같긴하다. 찾아보니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식적으로 답을 해두었더라. 윈도우를 쓰는 사람들은 경험하셨겠지만 간혹 어떤 프로그램들은 묻지도 않고 우클릭시 나오는 메뉴에 자기만의 메뉴를 넣고, 그렇게 새로 추가된 메뉴에도 단축키가 강제되어 버리곤한다. 이런 것들이 사용자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렇게 새롭게 바뀌었다고 한다. 마음대로 윈도우 환경을 바꾸는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일일이 일반 사용자가 조정하지도 않을테니 이렇게 강제하는 것도 나쁜 전략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화 시켰다고 해서, 프로그램들이 그럼 이제부터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잘 지킬까? 벌써 내 백신 프로그램은 잘난듯 컨텍스트 메뉴를 집어 넣어버린것만 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단축키의 조합이 오른손에 마우스를 쥔 채로 쓰기가 어렵게 되는 부분에 집중을 하고 싶다. Shift + F10이나, Alt+Enter (이것은 20년간 그대로기는 하다)는 오른손에 마우스를 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구조이다. 그래서 이 속에서 무엇인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두가지 가설을 세워보려고 한다. 하나는 윈도우 11을 개발하던 친구들은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마소)의 윈도우의 단축키 혹은 윈도우 자체를 잘 안쓰던 젊은 세대가 주축이다. 나는 맥을 쓰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교토대학교의 정보학 연구과는 윈도우 보다 맥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여기는 엑티브엑스가 전혀 없으니 맥이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컴퓨터 사용 습관을 보면 마우스보다는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트랙패드를 더 많이 쓴다. 그걸로 정교한 작업도 진행한다. 그런 경우 양손을 항상 키보드 위에 올라가 있고, 마우스 커서를 욺직여야 하는 경우 키보드에서 손을 때는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트랙패드를 이용해 왔다. 이경우 Alt+Enter가 그렇게 번거롭지 않다. 같은 방식으로 Shift+F10도 아마 그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윈도우 11은 언제나 마이크로소프트(마소)가 그래왔듯이, 사용자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작지만 큰 변화를 줘본 것이다. 윈도우 노트북도 점점 트랙패드의 성능은 좋아 지고 있다. 아직 맥같은 성능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레노보 x1 카본 10세대만 봐도 패드의 감도가 정말 좋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마소는 앞으로 마우스가 아닌, 트랙패드의 사용자가 늘어나는 미래를 그리고 있고, 그에 맞는 인터페이스와 단축키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폭망한 Windows Me와 윈도우 8을 떠올려 보라. 마소는 변화를 읽었고, 그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시도로 인터페이스를 크게 바꾸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그 바뀜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이 윈도우 들은 거의 망해버렸다. 하지만 마소는 다시 그 다음 버전에서 실패한 시도와, 이전의 인터페이스 사이의 접점을 찾아 새롭게 윈도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기존 사용자들을 대거 흡수하였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옵션을 제시하여, 사람들이 차선을 더 쉽게 선택하도록(Anchoring 효과를 이용) 만들고 있는것은 아닐까? 정말 영리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마소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단하다 마소.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깨고 내려오면, 마소의 주식을 사야할까보다.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 열심히 적응하고 있는 윈도우 11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는 처음부터 그냥 버려질 운명인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헛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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