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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잘하는 일은 쉽다(교토에서 자전거 타기).

by 모콤보소 2023. 1. 9.

오늘은 일본의 휴일이다. 성인의 날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는 것을 자각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청년을 축하하는 취지라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덧 저런 말들의 신실함과 묵직함은 조롱을 받는 처지에 속한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런 조롱하는 듯한 태도의 번창은 '쿨'함이라는 탈을 쓰웠지만 그래도 각자의 소중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요즘 이들의 새로운 가면이길 그리고 그것을 내가 오해하고 있었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지금까지 자기 삶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가 조롱하는 입장에 있었다면, 이번기회에 조금은 그 지극한 자기 모순과 비하에서 빠져나올 수 있길 기원한다.

 

휴일이지만, 나는 여느날 처럼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연구소에 왔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작은 길들을 타고 대학교까지 오는데는 약 15분 정도가 걸린다. 오늘은 16분이 걸렸지만. 신호등이며 교차로가 많아 속도를 내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그래도 시야가 트인 곳에서는 제법 달리는 맛이 난다. 운동 효과도 꽤 있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살이 빠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은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어 정리해볼까 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오늘 학교까지 온 이후에 내 타임라인을 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wifi가 잡혀서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

 

"쉬운 것이 내가 잘하는 일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꽤나 자연스럽게 차도를 달리며 브레이크와 수신호를 조합하는 나를 보며 수줍어 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꽤 잘 타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를일이었다. 아직 학교까지는 2km 이상 남은 지점이었기에 내 숨과 함께 이 문장이 날아가버리지 않게 몇 번을 되내이며 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머리에 보존한 이 문장이, 글로 옮겨놓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도 잘 안되고 어딘가 어색한 비문임이 분명해 보였다. 고민을 해보았다. 어떻게 고치면 내 요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요리조리 고쳐 보아도 분명한 문장을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가 작가를 경외심에 바라보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어렴풋한 느낌과 생각을 마술처럼 우리앞에 분명하게 제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무튼 그런 사람이 아님을 깨달으며, 그래도 이 글의 제목이 된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은 쉽다' 정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는 '쉽다'도 '잘하는 일'도 아닌, '정말'이다.

 

그럼 '정말'로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확실히' 알고 있고, 자주 해보아 몸에 익어 있는 일 아닐까.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 기억이 틀린것 같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What I Know For Sure(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라는 책에서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안다'고 했던것 같다 - 나는 내가 그녀의 책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시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몇몇 부러움을 사는 친구들처럼 두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올림픽 선수처럼 빠르게 자전거를 타지도 못한다. 그래도 나는 이곳 교토에서 자전거를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타는 일을 꽤 쉽게 하고 있다. 두 달만에 이 일은 이제 나에게는 제법 잘하는 일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그렇게 쉽지는 않기에 '정말' 잘하는 일은 아닐지라도.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말 쉽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이 분명 나의 전문성이자 무기일텐데. 아무래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보노보의 성행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관련해서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가? 원래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의 전공이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신선하다. 계속 고민을 해보니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난 교토에서 식칼을 간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나는 쉬운일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남에게 이야기 하기.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통찰을 얻은 척, 세상을 다 이해한듯 착각하는 것을 아주 쉽게 한다. 와, 내가 이런 일들을 잘는구나!!

24개월을 콩고에서 보노보를 따라다녔지만 이들에 대한 연구에서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또한 동물이나 인간의(특히 나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행동 기저에 있는 동기의 진화적 이유(생존과 번식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evolutionary function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을 쉽게 해내곤 한다. 그리고 내 연구와 관련해서는 R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이 시각화한 자료를 끝없이 들여다보며 패턴을 발견하는 일을 정말 쉽고 즐겁게 한다. 그런데 이런 성향때문에 논문을 쓸 때 나는 자기 검열과 너무 많은 생각에 묻혀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한 자도 못쓰는 나를 보면서 어떡하지 하는 고민차에 뭐가 되던지 일단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작년 말부터 이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검열은 그만하고, 검토는 한 번만 하기로 마음 먹고 일단 써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 2주가 지난 요즘, 내 습관이 바뀌고 있음을 알게된다. 앞으로 100일 내가 블로그 글쓰기를 지속하여 나의 글이 100개 정도가 되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글 쓰기를 쉽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이제 내가 잘하는 일의 하나가 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2주를 지속한 요즘, 블로그에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 이전보다는 쉬워졌고, 그 덕인지 연구 논문을 진행하는 속도도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신기한 일이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어떤 일을 내가 쉽게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일의 난이도와는 무관하게 나의 전문성이 발휘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 쉽게 젓가락질을 하는 당신의 모습에 대부분의 서양사람들은 젓가락질을 무척이나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올해 내가 쉽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이런 블로그의 글쓰기를 계속한다면 아마 블로그 글쓰기는 나에게 쉬운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올해는 내가 쉽게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또 앞으로 쉽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 노력해 보면 어떨까? 나는 지금 이 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2시간 이상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이 과정이 쉽다고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쉬워질 것이다.

 

비슷하게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나에게 아직 쉽지 않다. 특히 옆에 바짝 붙어 빨리 달리는 자동차와, 남들에 대한 배려없이(사실 그런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인도를 달리는 대부분의 자전거를 마주할 때마다 좌절은 커지곤 한다. 그래도 노력해보자. 이 일이 쉬워질 때까지는 노력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위험성 이외의 당위도 충분하다.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법을 지키는 행위이고, 또 인도보다는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차도를 달릴 때의 위험성도 나같은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특정치 이상으로 올라가면 점점 낮아질 것이다. 그 날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두근거리지만 당당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노력하자. 글을 쓰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인도에서 타는 것이 왜 합리적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사고의 확률과 강도를 낮추기 위해서 룰을 정하고 시행중인지에 대해 다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스스로의 전문성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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