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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오스트리아에서 아내에게 급한 연락이 오다.

by 모콤보소 2023. 3. 12.

지난 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들었는데 급히 아내에게서 비디오 전화가 들어온다.

오스트리아 친구들과 와인 테이스팅을 간다고 했기에 잘 다녀오라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일까 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2년만에 처음으로 이상한 남녀 커플에게서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남자가 뒤쪽에서 아내에게 접근해 쉐이버 비슷한 모터 소리를 나게 해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여자는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고 있고, 그 둘을 웃으면서 도망갔다고 한다.

 

아내에게는 2년동안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던 나라로 기억되는 오스트리아. 그곳을 이제 1주일 후면 떠나오는데 그런 일을 당했다. 너무 억울해 했다. 나도 너무 화가났지만, 70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공감해주고 같이 화를 내줄 수 밖에. 다행히도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나와 함께 지냈던 지난 10월, 전철에서 칭챙총이라고 뒤에서 나불거리던 이민자 출신의 아이. 아름답고 살기가 좋은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와, 그 속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우게 된, 그 아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나와 아내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아름다운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대부분의 좋은 사람들 두고, 굳이 몇몇의 못난이들에게 주눅을 들 필요가 없다.

보통 저런식으로 대놓고 허튼짓을 하는 사람들은 저질의 사람이라고 분류하여도 된다. 다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어린아이인 경우에는, 그들이 성장후 그들의 지난날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를 할 것으로 기대하여도 된다. 그러나, 이미 다 커버린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 그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그 무엇이리라. 영장류학은 전공하는 사람으로 이들의 못난 행동이 진화적으로 어떻게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는 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원숭이만 하더라도 자기보다 높은 서열의 원숭이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바로 자기보다 낮은 서열의 원숭이를 공격해서 위로부터 내려온 공격을 아래로 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나 자연 상태가 아닌, 인간이 먹이를 공급하는 곳에서 그런 행동들이 심해진다. 아마도 자연 상태보다 인간이 먹이를 공급하는 경우, 그룹의 크기가 자연상태보다 많으면 20배 이상 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마리 한마리와의 관계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덜하게 되므로, 이들의 뇌의 보상 체계가 아마도 뒷일을 걱정하는 식으로는 덜 작동하게 되어 이런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상태에서는 작은 집단의 크기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좀더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집단 내부가 분열될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서식지를 다른 집단에게 빼앗길 수 있으므로, 뒤도 안보고 자기에게 들어온 공격을 자기보다 약한 남에게 전가하는 행동양식은 발달과정에서 억제되거나 적어도 많은 보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작금의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자. 온라인을 빠져나와 자기의 얼굴을 걸고 있는 현실세계에서는 내뱉기가 쉽지않은 말들, 그리고 행동들을 익명이란 이름 하에 온라인에서 수행하는 못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아마도 오스트리아에서 마주한 저 청년들처럼, 현실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혹은 사회적으로 중간 이상의 계급에서 활동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물론 예외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저런 이들이 평균값을 이룬 사회는 아마도 정글 같을 것이므로, 오스트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 우리 사회에서 그런 혐오와 차별을 내뱉는 온라인 상의 사람들과, 그들이 마치 주류에 들어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주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정치인들을 보자. 그런 사람들이 마치 주류인양 착각을 하게 될 때, 그들은 사회안으로 들어와 집단 광기를 이용해 약자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들이 가진 울분을, 이제 주류에 합류한 것처럼 착각한 그들은 보다 마이너한 그룹을 만들어 낙인을 찍고 그들에게 그들의 울분을 폭력적으로 전가한다.

 

나는 차별 발언 금지법에 대해서 찬성한다. 왜냐고? 그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숭이일때부터 진화시켜온 공격성과 타집단에 대한 몰이해를 이용한 사회적 장벽 쌓기를 조금이나마 걸러주고 누그러뜨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진화가 영장류 혹은 그 이전부터 갖춰져 왔을지 모를 우리안의 폭력성과 무지와 두려움에 바탕한 타집단에 대한 적대심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침팬지를 보고 있으면, 이웃하는 집단과의 마주침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 그래서 서로 죽고 죽인다. 그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인간도 수렵채집인 사회에서는 그렇게 많은 집단간의 다툼에 의한 죽임 혹은 죽음이 어른 남성의 평균 수명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농경 이전의 원시 사회는 비폭력적이었음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침팬지의 연구, 파푸아뉴기니의 인류학 연구를 보아도 인간의 폭력성이 농경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보노보 또한 싸울 때는 싸운다. 다만, 암컷들의 연대덕에 집단간에 서로 마주하더라도 비교적 평화적으로 두 집단은 공존할 수 있다.

음식을 나누며 평화로운 이미지의 보노보지만, 암컷들 또한 연대하고 싸울때는 싸운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지금의 평화를 이루었는가? 그것은 서로 다른 집단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수에 속한, 혹은 낮은 서열의 사람에 대해서 침팬지나 일본원숭이처럼 폭력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많은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개인 혹은 특정 집단보다 더 강하고 그래도 특정인이 아닌,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법에 의해서 작동하는 공권력을 확립한 것이 그 첫번째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차별 발언 혹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 발언들은 우리 인간의 본성의 어두운 면을 키우는 너무도 좋은 양분이 되므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의 일이 모두 그렇듯 그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칼로 무를 자르듯 여기까지는 차별이고 저기까지는 아니다 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도 판례라는 진화적 과정을 거쳐 하나하나 다듬어 질 것으로 생각한다.

 

아내가 당했다는 인종 공격에, 화가 나서 두서없이 적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리고 그런 위축된 마음으로 사회에서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의 경우보다 더 많은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인간이 이런 전략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공정을 부르짖기 전에 나는 자기보다 힘없는 약자를 찍어 누르고는 있는게 아닌지, 그리고 나의 그런 부르짖음이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를 위축시키는 일인지 한 번 돌아보자. 그런 사람이 이런 글을 볼 일도 없을 것이고, 보아도 바뀔 것으로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3지대에 속한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가끔 이들을 회색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의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고 믿으며, 그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선명한 의견을 갖지 않아도 된다. 이 글을 읽어주실 스스로를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의견이, 사회가 극단적으로 나뉘게 되었을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신의 이성, 그리고 그 이성을 발휘한 작은 행동이 사회가 극단론자들에 의해서 한쪽으로 쏠려가며 인류사에 남는 크나큰 실수를 하는 것을 막아준다.

 

화를 누르며 글을 쓰는 것이 쉽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날에 나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것 같아 글을 써보았다. 아주 작은 영향력이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감사드리며,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믿음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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