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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

다시 일본 생활

by 모콤보소 2022. 12. 25.

2022년 11월 1일.

다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본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교토다.

교토는 일본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지이며, 코로나 이전에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에 오고 싶어하는 이유로도 꼽히는 멋진 곳이다. 더 짧을 수 있지만, 앞으로 2년간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바로 삐걱거림이 생긴다. 은행계좌 때문에...

일본의 은행계좌는 외국인인 경우 재류카드에 찍혀있는 비자의 유효 기간 동안만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일본에 온 지금, 새로운 재류카드 등록,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변경해야 했다. 그래서 은행에 연락을 하였다. 그랬더니 내점을 하거나 우편으로 서류를 받아서 보내야 한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들이 온라인 상의 비대면으로 가능한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이런 방식이 아직도 주가 된다. 몇일이 지나, 우편이 도착하여 서류를 작성하였다. 하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러한 작업에 30분이 넘게 소요가 된다. 한 자 한 자 틀리지 않도록 작업을 해야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나는 이럴 때 나만의 특기를 발휘한다. 이런식으로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니,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하기 쉽지가 않지 하고 바로 불만섞인 생각과 말을 내뱉는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런 행동은 과학적인 근거없이 그냥 불편함에 대한 아저씨의 불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은행에서 보내온 서류. 한자를 쓰다가 왜 이런것을 손으로 입력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끝을 내려고 내가 글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한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는 왜 아무런 화풀이 대상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고 있을까? 이러한 내 행동은 합리적일까?

 

인간을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혹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가정하에, 이런 내 행동은 전혀 합리적 혹은 이성적이지 않다. 왜냐고? 누구도 들어줄 사람도 없고, 이렇게 욱하는 내 심정이, 바로 내 상한 감정을 더 상하게 하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 도움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은 심지어 나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키고, 나는 이 일을 더 하기가 싫어지게 만들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을까?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 행동은 내 뒤틀리는 감정에 충실히 따른 행위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일관성을 유지시켜주고, 그래서 내 멋진(반어법이다) 자존감을 유지시켜주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특별히 득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사회 구조와 엮어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식으로 꼼꼼하고 오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누가 이득을 볼까? 그리고 왜 일본에는 이런식으로 어쩌면 불편을 유도하려는 것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을까?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이런 시스템에 따르지 않으려는 시도는 지속되지만 계속 무산이 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쳐서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한가지 내가 생각하는 이런 사회의 경직성의 원인은 통계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실수의 비용을 일본 사회가 개인에게 혹은 개인에게만 너무 크게 지불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실수의 비용이 무엇이고 이것을 개인에게 지불하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실수의 비용은, 아마도 한자 하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생각해보면 될것같다. 우리는 신분제 사회를 벗어난지 길어야 150년 정도이며, 국가라는 이름으로 많은 강압을 행사하던 이들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진 것도 30여년 정도 지났을 뿐이다. 일본도 1945년 까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한자 하나 때문에 이름이 바뀌어 나는 가기도 싫은 군대에 끌려가는 일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러한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내 개인의 변론 혹은 권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런 곳에서 수백년, 혹은 수천년을 살아온 집단의 문화가(한일 양국에 다 해당된다) 얼마나 실수에 민감할지, 그리고 시스템에 거스르는 일을 개인들이 기꺼이 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그냥 주저리 주저리 써내려 갔다만,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어떠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실수(혹은 오류)는 통계적으로 발생한다. 이때 시스템을 남보다 더 잘 이해하고 빠르게 행동하여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영악한 개인에게는 좋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조금은 더 쉽게 디자인하고, 그리고 오류 혹은 실수의 비용을 개인에게 조금 덜 지불하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다시 말해 우리가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실수에 대해서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이뤄내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인간 개인 개인의 행동은 합리적일 수도 있고,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행동 양식은 아마도 그 시스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행동일 것이다. 즉 한 시스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이 방식은 그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평균적인 행동양식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해서도 통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작동 방식이, 시대의 흐름과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평가를 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사회처럼 갈라파고스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 시스템은 아직도 많은 경우, 신분제 사회와 국가에 의한 폭력에 찌들어 있던 그 시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일본과는 다르게 시스템에 순응해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만큼, 이 시스템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비슷하게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라는 것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MZ로 대표되는 사회에 새로운 평균을 만들어갈 세대가, 시스템에 맞춰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더 잘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위에서 잠깐 말한 것처럼, 한 세대의 구성원의 평균적 성향이 이렇게 된 것이라면, 분명 이러한 성향이 우리 사회 구조안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적어도 그 세대안에서는 그러한 성향의 선택이 합리적이라고는 볼 수 있을 겉이다. 물론 내가 걱정하는 것처럼 MZ세대가 보여주는 성향의 평균값에 대한 나의 판단이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위에서 말한 시스템에 맞춰서 우리 사회가 제시한 방법을 통해 최대의 이득을 취하는 스페셜 리스트에 대한 선호 성향이 평균적으로 선택이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이들이 이런 성향을 띠게 된 우리 사회의 보상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개개인이 아닌 평균이 이렇게 기울어지게 되었는가. 왜 평균적으로는 합리적인 집단의 성향이 이런 방향을 향하게 되었는지. 아마도 내가 처음에 이야기를 시작한, 실수에 대한 비용을 개인에게 너무 크게 전가하는 일본의 사회가,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 역시 아니었는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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