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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

교토에서 식칼을 갈면서 2

by 모콤보소 2022. 12. 30.

지난글

 

교토에서 식칼을 갈면서

지난 11월 일본에 와서 정착하며 식칼을 샀다. 괜찮은 식칼한번 써보자 하며 내딴에는 거금인 3500엔을 들여 시모무라 공업의 몰리브덴/바나듐 강의 식칼을 구매하였다. 처음으로 사보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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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결국 숫돌을 사고만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단순히 조금 더 잘 드는 식칼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쉽다면 쉬운 일에 마가 끼어버렸다. 이건 나의 성향이기도 하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쉬운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고 하셨다는데, 나도 아마 비슷한 성향의 사람인가보다.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보고도 싶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서론이 길어졌다. 몇일전 주문한 숫돌이 집으로 왔고, 나는 유튜브를 뒤지며 칼가는 방법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보았다. 유튜브를 통해 배운 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칼의 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칼과 숫돌이 45도 정도의 각을 이루도록 칼을 숫돌에 비스듬하게 놓고, 칼을 칼등의 방향으로 움직일때 힘을 주고, 칼날의 방향으로 움직일때는 힘을 빼서 칼을 갈면 된다고 한다. 아래 사진처럼 칼을 숫돌위에 놓고(외장하드와 커터칼이다) 위쪽으로 밀어올릴때 힘을 주고, 당길 때는 힘을 빼면 된다. 그러면 날이 잘 들어선다고 한다.

식칼과 숫돌은 아니지만 대략 이렇게 놓고 칼을 위쪽으로 밀때 힘을 주고, 당길 때는 힘을 뺀다.

그런데 반대편 칼날을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칼을 숫돌과 45도 각도로 교차하여 가는 경우, 위의 그림처럼 칼날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칼날이 들어선 양쪽면에서 같아야 칼질이 매끄럽게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양쪽의 칼날이 갈린 방향이 똑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어떻게 칼을 두어야 하는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냥 너무 쉬운 것인데, 나는 머리로 이것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 잘 그려지지 않는다기 보다는 너무 쉽게 머리속에 방향이 그려져서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내 고민하는 버릇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 버릇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이어진 주입식 교육과 단답형의 시험으로 다져진, 시험에서 너무 쉬운 것은 함정일 수 있다라는 내 인생의 초반의 깨달음속에서 다져진 것이리라.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12년간 배워 온, 즉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명목으로 영어 혹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단순히 어다르고 아다르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이 더 중요한 그런 평가 구조에서 길러진 습관이리라. 지난 시간에도 잠깐 이야기 했듯이, 이런 식의 실수를 덜하는 문제풀이 방식과 평가 방식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이렇게 나눠진 집단에 의해 계층이 나뉘어 버리게 되고 이 계층의 이동은 너무도 어려운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습관이 길러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실수에 대한(이 경우 단지 단답형 시험에서 함정을 걸러내지 못한 것에 대한) 개인의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시험에 매달리고, 좋은 대학에 더 매달릴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잡설이 길어지고 있지만, 다시 칼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너무 쉽게 떠오르는 것은 틀렸을 수도 있기에, 검토를 또 해보고 해봐야 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내가 살아온 우리의 교육과 평가 방식에 대해서 조금 울화가 치밀고 말았다. 우리 인생의 정말 중요한 어린 시기를, 시험 출제자라는 자가 파두었을 지 모르는 함정을 추리기 위해서 낭비해야만 하는 현실(그리고 이 속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은 약은 머리를 가진 누군가를 우리는 칭송하며,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보단 우월감 혹은 안도를 느끼게 만드는 그 환경)속에서,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도 다시 칼갈이로 돌아가자. 화만내고 있다고 해서 세상은 안바뀐다. 나는 그래도 칼을 갈아야지!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자 그럼 어떻게 반대편을 갈아야 할까? 내 해답은 쉬웠다. 그냥 유성펜으로 칼날의 양면에 날이 같은 방향으로 들어서도록 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방향대로 칼날이 들어서도록 칼을 갈았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혹시라도 참고할 사람들을 위해서 반대편 칼날을 가는 방법을 아래 그림과 같이 만들었으니,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반대편을 갈면 된다.

위쪽 그림 혹은 아래쪽 그림처럼 칼을 숫돌에 올리고 반대편을 갈면 된다. 내 손이 움직이기 편한 방식을 이용하자.

 자. 이제 방향을 알았으니, 칼을 갈아본다. 칼 하나 가는거 참 힘들게 한다. 설명서에 따라 숫돌을 물에 약 10분간 담궈두고, 물을 조금 붓고 칼을 갈기시작했다. 엇. '슥삭 슥삭' 초보자인 내가 가는데도, 전설의 고향에서나 들어봄직한 소리가 제법 예사롭지 않다. 은근히 재미도 있다. 그리고 약 10분을 갈고, 대파를 잘라보았다.

 

그런데...

 

아....

 

오늘도 대파는 내 칼을 밀어낸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나는 또 내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만 것인가? 역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놓고는, 이것은 긁어서 부스럼이 아니고, 이렇게 긁어서 파내버려야 새살이 돋는다고 말하며, 나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다시한번 증명한 것인가?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후회는 짧게하기로 결정했기에,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좋았던 칼도 망가뜨려버렸고, 돈은 돈대로 쓰고 말았다. 이제 포기해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내의 조언을 따라 그냥 모든것을 잊고, 어디서 싼 칼을 새로 사다가 쓰는게 나을까?

 

이왕 이렇게 된거 더 공부를 해보았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라고는 고민하고, 또 공부해보는 것이지 않는가. 내 칼은 몰리브덴/바나듐 합금으로 만든 칼이다. 이 칼은 분명 경도(강도가 아니다)가 일반 칼보다 높을 것 같았다. 찾아보니 높다고 한다. 그럼 경도가 높다는 말은, 경도가 더 낮은 어떤 것에 의해서 잘 갈리지 않는다는 말이니. 자 그럼, 내 숫돌이 혹시 내 칼보다 경도가 더 낮은 것은 아닐까? 오. 그럴듣한 가설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처음부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한 잘못된 방법으로 칼을 갈았던 것은 아닐까?

 

와...세상에 이래서 배우라고 한것인가? 이 얼마나 똑똑한 발상인가. 와 나는 정말 똑똑하구나라며  자기 기만이란 녀석이 또 나를 추켜세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또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증명할 기회를 만들고 있는 나를 보며, 인간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합리성을 가장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직 이 이야기의 끝은 나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 스스로를 기만한 덕에, 나라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마존에서 2000엔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숫돌을 카트에 넣고 주문 버튼을 눌러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편은 물건이 도착하는 내일,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 마지막 시도를 마친 이후에 쓸것 같다. 예상하건데, 아마도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증명하며 이 3부작을 마치게 될 것 같다. 비록 그렇게 끝이 나더라도 나는 큰 걱정이 없다. 왜냐면, 나의 자기 기만은 나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고마운 친구에게 매몰되지 않고, 잘 다루면 된다. 불과 칼이 위험한게 아니다. 이를 잘못 사용할 때 위험해진다. 이제는 칼 값보다 숫돌에 투자한 비용이 더 커져버린 것은 안비밀이지만, 이 경험으로 나는 칼을 꽤 잘 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 이미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만족할 수 있는 건, 진화가 나에게 안겨준 큰 선물인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모델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는 자기 기만 덕이다. 그리고 정말로 다이아몬드 숫돌은 내 칼을 다시 잘 들게 만들어 줄수도 있지 않는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며, 글을 마무리 한다. 혹시 칼이 잘 안드는가? 교토에 살면 가지고 오라. 내가 300엔에 갈아주겠다. 특히 싼 칼인 경우 아주 잘 들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너무 비싸다고? 그럼 협상 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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