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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재료와 양념 – 후쿠오카의 참깨고등어(고마사바)

by 모콤보소 2023. 2. 10.

빠르게 걷거나, 빠르게 자전거를 타면 생각이 없어진다. 그런데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머릿속 어디에서부터인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부유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유하던 생각은 신호등과 함께 멈춰선 순간, 실체성을 갖기 시작한다. 가끔은 그 녀석들 중에 한 놈이 머리를 점령한다. 오늘은 내 머릿속에서 부유하다가 신호등과 함께 갑자기 요리라는 녀석이 실체성을 가지고 튀어 올라왔다. 요리에 관한 생각은 자전거를 타면서 마치 내가 꿈속에서 이런 저런 상황을 차원이동 하는 것 처럼 발표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서는 발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하는 생각으로 바뀌다가, 요리와 발표는 비슷한게 있다는 결론을 맺으며 착륙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요리와 발표, 요리와 발표 이렇게 되뇌이면서 학교에 도착하였다.

 

자 그럼. 오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리와 발표. 그 둘은 비슷한 면이 있다. 재료(주제 혹은 내용)와 양념(기술 혹은 디자인)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아마도 오늘 이야기는 몇 일 전 업로드한 구글 애드샌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긴 글의 속편 정도가 될 것 같으니, 이 글을 읽고 구미가 당긴다면 긴데다, 비문과 오타도 많은 아래의 글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왜 오타가 많은 글은 읽기 싫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언젠가 쓰고 싶지만 오늘은 아니다. 

https://beyondtw.tistory.com/51

 

구글 애드센스(AdSense)를 시작하다.

이 블로그를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죄송하지만 약 이 주 전부터 구글의 광고를 달게 되었다. 중간광고는 없이 최소한의 광고만 나오도록 설정을 해두었지만, 애드센스가 마음대로 긴 글

beyondtw.tistory.com

 

오늘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신호등을 만나서 기다리는 도중에 가끔은 부유하던 생각 중 하나가 내 의식에 잡힌다. 평소의 습관대로, 나는 그 녀석을 놓아주지 않았고 자전거를 타는 약 10여분의 시간 동안 여기에 붙여보고 저기에 붙여보며 어디에서 이 녀석이 나왔고, 또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어느덧 학교에 도착하였고, 나는 금세 방금까지 나와 함께하던 이 녀석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미리 메모를 해두었다.

 

"재료와 양념" 이렇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요리에 미원(MSG)을 넣고 있다. 자취 경력이 10년이 넘는 내가 다시다 같은 조미료가 아닌 반투명의 미원을 사게 된 것은 지난 2020 이후부터인것 같다. 뭐 그전에도 어차피 msg가 들어있지 않는 조미료는 거의 발견하지도 못하였고, 직접적으로 넣지 않았다 뿐이지 다시다 같은 것들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msg를 안썼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msg 무첨가라고 써있는 제품에도 화학적으로 msg가 들어있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20년이 넘었기에 사실 천연조미료라고 하는 마케팅 용어에도 반감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역시 사람인지라, 미원이라고 써있는 순수 msg 결정을 내 손으로 직접 음식에 넣는 것이 꺼려졌고, 이에 조금 망설였던 것 뿐이었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을 하며, 조금은 독립적으로 사고를 하는 방법을 배운 이후부터는 이런 내 행동에 녹아있는 비합리적 부분이 - 미원을 사용하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 어떻게 나에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조금은 skeptical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주변의 많은 이들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인가를 마음껏 이용하기는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배운 것을 이용해서 내 행동을 개선해 보려고 하지만, 영장류, 그 중에서도 최고의 사회성을 가진 인간의 일원으로 태어난 나는, 비합리성을 느끼면서도 행동을 개선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한, 오히려 이성적인 행동을 수행함에도, 스스로가 이것이 비이성적인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게 만드는 우리의 뇌의 작동 방식이 정말 놀랍기만 하다.

MSG가 들어간 다시로 맛을 낸 된장국과, 맛소금을 아주 살짝 뿌린 돼지고기. 슈퍼에 가서 사는 재료의 질은 결코 낮지 않다.

잡설이 길어졌지만, 여기서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온다. 미원은 조미료에 불과하다. 왜냐면 그 자체로는 썩 맛이 좋지도 않고, 영양면에서도 큰 쓸모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음식의 본 재료가 될 수 없다. 스테이크에 미원을 뿌린다고 하여, 고기가 본 재료이지, 미원이 본재료이지 않은 것처럼. 그런데, 이 미원이 아주 조금의 양으로, 본 재료의 맛을 완전히 바꿔준다. 소량의 소금만으로는 만들어 내기 힘든 그 깊은 맛을, 아주 약간의 미원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우리 뇌와 혀를 속이는 행동이지만, 미원으로 만들어낸 깊은 맛이 들어간 음식들은, 정제된 단맛을 가진 음식과는 달리 단백질이나 섬유질이 풍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그런 음식들이 될 수는 없고, 따라서 일반적인 이용을 생각할 때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후쿠오카의 선술집에서 먹은 고등어 회. 재료가 너무 훌륭하니, 양념은 방해가 된다. 물론 오른쪽의 고마사바(참깨고등어)처럼 양념이 좋은 재료와 잘 어울어지면 정말 맛있는 음식이 된다.

아직 가설이긴 하지만, 우리의 소화 기관 - 뇌 신경계는 섭취한 단백질 혹은 섬유질의 총량에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 된다. 그래서 단백질이나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일정량 이상 섭취하였을때 우리 인간의 소화 기관과 뇌의 연결고리는 이제는 그만 먹어도 된다라는 신호를 만들어 낸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농경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 우리가 아마도 보노보와 침패진에게 더 가까웠을 때 진화한 우리의 뇌의 보상 시스템이, 단백질이나 섬유질을 기준으로 그날 하루의 에너지 섭취를 조절하였을 때 더 잘 작동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가설은 우리가 단백질이나 섬유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도록 정제된 설탕이 많이 든 케익이나, 초콜렛, 머쉬멜로우 등을 많이 먹을 때,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 자연상태에서 존재하는 달콤한 것(과일 같은)을 먹을 때는 그래도 섬유질 혹은 단백질이 같이 섭취되고, 뇌는 그렇게 섭취한 단백질의 양에 반응하여 식욕을 억제한다. 물론 이런 달콤한 과일에는 단백질이나 섬유질이 풍부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아마도 식욕 억제는 천천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그런 귀한 당분이 풍부한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할 수 있게 해준 아주 멋진 적응 메커니즘이 되는 것이다. 이 가설로 현대의 잘 정제된 설탕이 풍부한 케익이나 머쉬멜로 등은, 섬유질이나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식욕이 사라지지 않게 된다. 만약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은 상태로 이런 음식을 섭취한 경우, 먹을수록 더 많이 먹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아름다운 가설인가. 

 

이제 미원 이야기로 돌아가자. 적어도 미원을 쓰는 식재료는 단백질 계열이 많기 때문에, 설탕이 많이 들어간 정제된 음식과 같은 부작용은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미원을 잘 쓰면 음식의 주 재료가 되는 야채, 혹은 고기가 더욱 맛있어 지고 이 덕분에 양질의 단백질을 더 적은 양의 소금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된다 . 또 시판중인 미원을 잘 이용하면 천연 재료가 자연적으로 분해되며 msg를 만들어 낼 때 생길 수 있는 각종 부산물로부터도 안전한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미원 그 자체로는 음식의 본질이 아니며, 주 재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물론 소금과 미원을 주 재료로 아주 맛있는 양념을 만들어서 밥에 뿌려 먹을 수는 있겠지만, 이때도 우리가 먹으려고 하는 것는 밥이며, 그것의 주 재료는 쌀이다. 즉 아무리 양념이 맛있어도 그것은 양념일 뿐이다.

 

물론 상황(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주 재료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혹은 음식을 하는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서 좋은 재료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에도, msg는 나같은 평균적인 사람이 평균 이상의 요리 실력을 가진 사람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을 선사한다. 그래서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좋은 재료만 구별하는 눈을 가지면 (이것도 요즘 수퍼에서 나쁜 재료를 찾는게 어렵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몸에 좋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비싼돈을 내지 않고도 쉽게 섭취 할 수 있게 해준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식생활의 평균을 끌어 올려준 아주 고마운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즉 그냥 첨가하는 양념이라고 하기에는 그 역할이 너무도 지대해서, 익숙해지면, 미원이 없으면 거의 모든 음식이 별로 맛이 없게 느껴지게 되는 수준까지도 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발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학회만이 아니고 요즘 우리는 정말 많은 발표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유튜브 컨텐츠는 하나 하나가 발표와 같지 않은가. 이런 발표 중 인기를 끄는 발표는 보통 내용도 좋고,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도 뛰어나다. 하지만 우리같은 일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것을 모두 갖추기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우리의 발표가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발표의 기술적인 측면은 조미료, 그리고 발표의 내용은 요리의 메인이 되는 주 재료인 것이다. 즉 재료가 좋다면 (내용이 충실하다면), 조미료(발표 기술)는 그 맛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그런데 별다른 내용이 없이도 훌륭한 발표 기술을 통해 어느 정도는 많은 이들을 현혹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누군가의 발표에서 정말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사람이 아닌, 그저 시간을 때워야 하는 사람에게, 혹은 깊이 있는 내용은 아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발표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발표 기술만 가지고도 충분 할 수 있다. 내가 읽어본 공공 기관에서 만들어낸 연구 보고서나, 참관한 발표 중 일부는 형식적으로 너무도 훌륭하여,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경우도 있었다. 다만 그런 보고서를 주의깊게 읽거나, 실무자에게 필요한 질문을 하였을때, 연구자로써 큰 도움이 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왜냐면 그런 발표와 보고서에는 정작 중요한 디테일과 내용이 부실하였기 때문이다. 즉 갖은 조미료로 맛은 냈지만, 원재료가 부실하였고, 그렇기에 좋은 재료에 대해서 충분하게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만족감은 줄 수 없던 그런 요리를 만들어 낸것과 같았던 것이다. 

 

이쯤되면 예상하셨겠지만,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좋은 연구자 혹은 정말로 좋은 실력을 갖춘 발표자가 되고 싶으면 일단은 내용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미원 같은 역할을 하는 파워포인트는 점점 더 발전하고 있고, 그들은 더 맛있는 조미료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중이다. 그러니 어떤 조미료를 고르고 어떻게 써야 더 맛있을지 많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들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일반 비지니스의 세계에서도 진짜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다 비슷하겠지만, 학계에는 일단은 내용이 충실하다면, 어설픈 영어도, 예쁘지 않은 발표자료도 감내하며 당신이 가져온 주제를 알아주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을 믿어라. 또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껍데기(조미료나 발표 기술)에 현혹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도 살짝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 포함시키고 싶지만, 나는 아직 갈길이 먼 사람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는 그런 곳에서는 조미료는 오히려 적을 수록 더 높은 가치를 쳐주기도 한다.

 

자. 껍데기는 치우고, 여러분의 진짜 알맹이를 만들어낼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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